AI를 공부하니 현장이 보인다: Pre-sales Engineer(SE)직무 적응기
AI·정책 기획자였던 내가 Pre-sales? SE 직무로 처음 마주친 것들 — 낯선 용어, 새로운 세계, 그리고 AI 비즈니스
0. 들어가며
‘AI가 현장에서 이렇게 쓰이고 있었구나.’ 를 깨닫게 된 소중한 취업
저는 AI 부트캠프 합류 전까지 AI·디지털 전환 관련 정책과 R&D 기획, 그리고 스타트업에서 제품/사업기획 업무를 해왔습니다. 문서와 제안서 속에서 AI를 접하는데 그치지 않고 AI/SW Engineer로 거듭나기 위해 부트캠프에 합류하였죠.
그리고…
개발자는 되지 못했지만 Pre-sales Engineer가 되었습니다😂
원래는 신입 개발자로써 지원한 회사인데, 대표님께서 제 이력서를 보시고 ‘개발자는 모르겠지만 Pre-sales로는 적당해 보이는데 생각 없는지 물어보라’며 개발 총괄담당자님을 통해 여쭤보신 것을 보면 확실히 ‘연’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처음엔 ‘개발 직무가 아니면 좀 어려울것 같다’ 라는 이유로 고사했었습니다. 배가 불렀죠.
하지만 취업 준비 과정에서 이력서 대충 스캔하고 ‘나이 많네.’ 혹은 ‘쓸데없는 이력이 너무 많네.’ 하며 넘기거나 면접 자리에서 대놓고 ‘본인은 개발을 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고 묻는 분들 사이에서 상처받았던 상황에서 넘겨질 수도 있는 이력서 하나 허투루 보지 않으신 대표님의 배려가 너무 감사했고, 꼭 개발자만이 AI 취업의 전부가 아니고 본인은 잘 맞을것 같으니 한번 면접이라도 보는것이 어떻겠냐는 멘토님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다시 전화를 걸어 면접을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길어지는 홈프로텍터 생활에 찬밥 더운밥 가릴 게 없었던데다 코딩에 크게 자신이 없었던 저에게 있어 어찌보면 좋은 기회라 생각했고, 동기들 중 첫번째 타자로 취업에 성공하였습니다.
일단 근 반년만에 무사히 출근은 했는데..
회사 자료를 스터디하며 많이 당황했습니다. 컴퓨터나 네트워크 기본 지식은 통밥으로 대충 아는데, 전화통신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거든요. 콜센터는 이용만 해봤지 그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가 알 리가 없죠. 수많은 단기직 경험을 해봤는데 심지어 콜센터는 파트타이머로도 체험해 본 적이 없었네요..
그래서 공부에서 탈출하고 좋아했던 저는 또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1. 첫 번째 벽: 전화통신 용어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컴퓨터와 네트워크 용어는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처기 공부도 했고, SI 현장에 1년정도 있다보니 웬만한건 거의 다 접해보거나 최소 한번 이상은 들어본 용어들이거든요.
근데 전화통신 용어는 달랐습니다.
PBX, CTI, IVR, ACD, SIP, RTP…
선배들은 너무 당연하게 쓰고 있었습니다. IT 용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이 애매한 영역 — 전화통신…
공부하면서 하나씩 뜯어보니 생각보다 구조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회사 내 전화를 관리하는 교환기(PBX)가 있고, 거기에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CTI)가 붙고, 전화를 받으면 자동 안내가 나오고(IVR), 상담원에게 적절히 분배하는(ACD) 흐름입니다.
다만 이걸 컴퓨터 네트워크만큼 fit하게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새로운 도메인에 들어올 때마다 느끼는 것: 용어가 먼저다.
2. 두 번째 벽: SE는 단순히 내가 알던 영업 지원이 아니었다
기획 업무를 하면서 영업 지원 문서는 많이 만들어봤습니다. 제안서, 발표 자료, 회사소개서, 제품소개서 같은 것들이요. 그래서 SE도 그런 류의 일이겠거니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이 회사에서 SE의 실제 흐름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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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 영업사나 대리점에서 고객을 유치해오면, 먼저 간단한 유선 상담을 통해 고객의 업무 환경을 파악합니다. 현재 어떤 전화 시스템을 쓰고 있는지, 상담원이 몇 명인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등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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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약속을 잡고 직접 미팅에 나가 데모를 시연하고 제품을 소개하면서 요구사항을 듣습니다. 여기서 고객이 원하는 게 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이후 단계가 제대로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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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사항이 정리되면 고객 환경에 가장 맞는 상품과 옵션을 결정하고 견적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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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조율이 끝나면 운영팀이 구축을 진행하고, 이후 이슈가 생기면 운영팀과 협업해서 대응합니다.
그리고.. 한 번 담당한 고객사는 계속 내 고객사가 됩니다.
한마디로 기술과 고객 사이에서 통역하는 역할입니다. 문서를 만드는 게 아니라, 고객이 뭘 원하는지를 기술적으로 해석하고 적절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당연히 제품을 깊이 알아야 하고, 고객의 기술 환경도 빠르게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공부할 게 예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제품 구조, 네트워크 인프라, 제품 화면과 기능, 고객 환경별 세팅 방식까지..
처음엔 막막했지만 — 반대로 말하면 학습 목표가 아주 구체적으로 생긴 셈이기도 했습니다.
3. AI 비즈니스 현장 체감은 좋았다.
회사의 주력 제품은 클라우드 기반 IPCC입니다. IPCC란 ‘인터넷 프로토콜(VoIP)을 기반으로 음성, 데이터, 이메일 등 다양한 통신 채널을 통합하여 고객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콜센터 솔루션’으로, 우리가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하는 콜센터 업무 솔루션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가 은행이나 통신사 고객센터 등에 전화를 걸었을 때 나오는 멘트나 고객과의 통화 관리 뿐만 아니라, 업무를 수행하는 상담원분들도 관리하고, 상담 내역을 데이터화하여 기업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사안을 결정하는데 활용하기도 합니다.
제가 취업한 곳은 기존의 IPCC에 AI 기술을 활용하여 고도화된 AICC 솔루션을 원박스(one-box) 형태로 자체 개발하고 구축하여 고객에게 제공하는 곳입니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AI 기술이 솔루션에 접목되어 있는데, 구체적인 기술 적용 예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AI 어시스턴트 — 상담원이 고객과 통화하는 동안, AI가 대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텍스트로 변환하면서 동시에 관련 매뉴얼을 화면에 자동으로 띄워줍니다. RAG(검색 후 생성) 구조로 동작하기 때문에 AI가 내용을 지어내지 않고 실제 사내 문서 기반으로 답을 찾아옵니다. 통화가 끝나면 상담 내용을 자동 요약·분류해서 상담원의 수작업도 줄여줍니다.
AI 챗봇 — 단순 FAQ 응답이 아니라, 고객과 여러 번 주고받으며 예약이나 신청 같은 다단계 목적을 처리합니다. 고객사 환경에 따라 Gemma 2B, Gemma2 9B 같은 경량 sLLM을 쓰거나 외부 대형 LLM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구성합니다. MCP(Model Context Protocol)를 통해 고객사의 CRM, ERP, 결제 시스템과 직접 연동해서 챗봇이 조회나 예약 액션을 직접 수행할 수도 있습니다.
STT / TTS — ETRI 기술 기반의 E2E 딥러닝 음성인식 엔진으로 통화 내용을 실시간 텍스트로 변환합니다. 단순 변환에서 그치지 않고, 폭언이나 위협적인 발언을 실시간으로 감지해서 상담원을 보호하고, 주민등록번호나 계좌번호 같은 개인정보는 자동으로 마스킹 처리합니다.
TA(Text Analytics) — STT로 쌓인 통화 데이터 전수를 분석합니다. 반복 등장하는 키워드와 급상승 트렌드를 뽑아내고, 고객 감정(긍정/부정)까지 분류합니다. 상담원이 응대 규정을 잘 지켰는지 품질 평가도 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지금까지 부트캠프를 다니며 배우고 익혔던 RAG, sLLM, STT/TTS, TA 등의 AI 활용 기술이 실제 제품 안에서 각자 역할을 맡고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공부할 때는 기술 그 자체로만 봤는데, 현장에서는 실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합류했다면 이것 또한 제3의 벽이 되었을텐데, 입사 직전에 NLP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나서 합류해서 그런지 더 쉽게 이해가 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심지어 저희 팀에서 비교테스트해본 모델들을 이 회사에서도 자체 개발을 위해 테스트했던 것을 보니 뭔가 그 기간이 더 보람찬 시간으로 느껴졌습니다.
뿌듯했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들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게 확인된 느낌이랄까요.
4. 생존방법 : 일단 기록한다
이제 출근한지 겨우 이틀,
모든 것을 머릿속에만 담아두기엔 정보량이 너무 많았습니다. 낯선 용어, 생소한 업무 방식.. 가뜩이나 장/단기 기억력 모두 처참한 저에게 너무 힘든 상황입니다.
어떻게 이 많은 정보를 정리할까 하다가 부트캠프 참여하면서 개인적으로 개발 관련 markdown 문서를 정리했던 툴, 옵시디언을 활용해보기로 했습니다.
데일리노트에는 그날 있었던 콜과 미팅 내용, 새로 알게 된 것, task checklist를 수시로 작성하였습니다. 선배님들께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으면 그 내용을 바로 적었고, 선배님들의 고객 응대 통화에서 중요한 시사점도 바로 적었습니다. 형식은 중요하지 않으니 마구잡이로 받아적었습니다.
CTI의 정의보다 “고객사 자체 CRM 있으면 API 연동 제안”이라는 팁이 더 오래 남더라
용어 정리 파일은 단순한 사전이 아니라, 교과서 설명과 실무에서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를 함께 적는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일부를 발췌해서 블로그에 추가 정리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외부 미팅을 나가고 저의 고객이 생기면 또 어떻게 관리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맞는 방법인지는 사실 잘 모릅니다. 지금은 그냥 쌓아가고 있습니다.
5. 마치며
간만에 경험하는 출근 첫 주는 예상보다 낯설었고, 예상보다 흥미로웠습니다.
전화통신이라는 새로운 도메인, Pre-sales Engineer라는 생소한 역할, 그리고 AI 기술이 실제 비즈니스에 적용되는 현장.
긴 경력휴식기에 맘고생도 했지만, 그래도 보람찼던 지난 6개월이 헛되지 않도록, 그리고 40넘어서 시작한 새로운 도전이 빛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며 글을 마무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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